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1953년 파리에서 초연된 '고도를 기다리며'.

대체 고도는 누구인가.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기다리는가. 이것은 비 극인가 희극인가. 외마디 말로 주고 받는 난삽한 대화, 나무 한 그루 밖에 없는 무대-대체 이것은 연극이기라도 한 것인가.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엉터리 속임수에 놀아났다고 분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고 신문들의 평은 대단했다. 이 무렵 한국 판문점에서는 양측 대표가 악수조차 나누지 않은 채 휴전 협정에 조인했다. 여기서도 누군지도 모르는 그 고도를 기다리며 목매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시골길에 두 사내가 등장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들은 '고도'(godot)란 미지의 인물을 기다리는 중이다. 고도는 곧 온다고 하면서도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고도를 끊임없이 기다리면서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에스트라공이 '이제 우리 가자'고 하면 블라디미르는 '안돼'라고 한 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해.' '하긴 그래.(잠시 뒤) 너는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신하니?' '뭐라고?' '그를 기다려야만 하느냐고.''그가 저 나무 앞에서 말했어.(그들은 나무를 쳐다본다) 저거 말고 뭐가 보이니?' '저게 뭐야' '버드나무라고 하는 거야' '나뭇잎들은 어디 갔지?' '다 떨어졌어.'이 두 사내에 이어 럭키와 포조란 두 인물이 더 등장한다. 그들은 제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떠들면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세상을 뜨려고 하지만, 끝내 결행하지 않는다. 그들도 기다릴 뿐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1952년 발표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묘한 네 사내의 하염없는 기다림을 그린 부조리극이다. 베케트는 1930년대부터 파리에 체류하면서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엔 레지스탕스에 가담했기에 그의 문학은 프랑스 현대 문학사에 속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명문 출판사 '미뉘'에서 나왔고, 1953년1월3일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됐다. 연출은 로제 블랭이 맡았다.

초연 당시 '럭키'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장 마르탱은 1989년 베케트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오랜 친구로 지냈다. 그는 올해 베케트 타계 10주기를 맞아 특집을 꾸민 프랑스 문예지 '마가진 리테레르'에 그 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실었다. '나는 그동안 첫날 공연을 봤다고 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바빌론 소극장 객석은 200석이 넘지 않았다. (중략) 객석은 무엇을 보러 왔는지, 정확하게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하지만 '고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로 매일 밤 꽉 찼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당시 관객 대다수는 고도를 신(god)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 연극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다.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도를 기다리며'는 왜 이 지상에 태어났는지를 모르지만, 삶의 의미를 탐구하면서 동시에 무의미함을 깨닫는 인간의 이야기로 보면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인해 베케트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행복한 나날들'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승부의 끝' 등의 희곡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실존주의 시대의 부조리극을 이끈 공로로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대중과 언론의 접촉을 기피했고,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도 불참했다. 1989년 일생의 반려자였던 아내 수잔이 7월17일 세상을 뜨자 실의에 잠겼던 베케트는 12월22일 그 뒤를 따랐다.

(박해현기자 : hhpark@chosun.com)(조선일보 1999년 6월 1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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