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드로

[D. Diderot] (1713-1784)

 

Diderot는 Champagne 지방의 Langre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학업을 마친 후 자유롭게 여러 해 동안 방랑생활을 한다. 선천적으로 두뇌회전이 빠르고,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그는 또한 지식의 욕망과 글쓰는 정열이 많았던 사람이다. 방랑생활을 하는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가정교사, 번역, 서점점원, 다른 사람의 연설문 작성 등의 일을 하면서도, 그는 지시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문학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32세에 「Encyclopedie」의 출판 책임을 맡아 그 후 26년 동안 이 거대한 계획을 위해 헌신적인 일을 한다.

그는 철학적인 단상·시론·대화 등 여러 가지 형식의 많은 철학논문을 쓰고 자연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으로 무신론을 주장하거나 자연을 속박하고 정당한 쾌락을 금지하는 기독교 도덕을 비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을 배반할 수도 없고, 자연 밖에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루소와는 달리, 사회제도가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며, 인간은 그것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은 「Jacque Le Fataliste」(1737)와 「Le Neveu de Rameau」(1762) 이다. 서정적이고, 사실주의적인 그의 소설은 그의 철학과 조화를 잘 이루면서 새로운 소설기법을 담고 있어, 현대소설의 선구적인 위치에서 평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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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Denis Diderot)는 1713년 랑그르(Langres)에서 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주로 과학과 예술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보다도 그가 크게 영향받은 것은 볼테르를 비롯한 대부분의 계몽주의자들이 그렇듯이 영국의 계몽사상이었다. 그는 여러 편의 영국 사상서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그 가운데는 스탠얀(Stanyan)의 『그리스사』, 제임스(James)의 『의학사전』을 비롯해서 샤프츠베리(Shaftesbury)의 『덕과 공적에 관한 탐구』(Inquiry concerning Virtue and Merit)에다 자신의 주석을 첨가해 출판한 것도 있다.

1746년에 그는 프랑스가 아닌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출판한 첫 번째 저서 『철학적 사색』(Pensees philosophiques)을 통해 자유주의적인 자신의 사상을 대담하게 발표함으로써 주목과 비판을 함께 받기 시작했다. 1749년에는 『맹인에 관한 편지-눈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하여』(Lettre sur les aveugles a l'usage de ceux qui voient)를 런던에서 출판했다. 그의 무신론에 근거하여 유신론자들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표현하고 있는 이 책은 성주와 스콜라 철학자들의 분노를 사게 되고, 그 때문에 그는 결국 벵센느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자신의 투옥을 소크라테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여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가지고 들어가 6개월의 감방생활 동안 이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그는 『백과전서』의 집필에 더욱 몰두하여 1751년, 『백과전서』(Encyclopedia) 제1권을 출판한다.

1754년에는 『자연의 해석에 관한 사색』(Pensee sur l'nterpretation de la nature)을 출판하였고 1769년에는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화』(Entretien entre d'Alembert et Diderot)와 『달랑베르의 꿈』(Le reve de d'Alembert)을 썼지만 이것들은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다. 이것 이외에도 그는 『물질과 운동에 관한 철학적 제원리』, 『엘베티우스의 저서 『인간론』에대한 체계적 반박』, 『생리학 요강』등을 비롯해서 당시 프랑스 사회를 풍자하는 몇 편의 소설을 남기기도 했다.

디드로는 그의 놀라운 학문활동과 업적에 대한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프랑스에서는 평생 동안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중 1773년 러시아의 카타리나 여왕의 초청으로 6개월 간 그곳에 머물면서 여왕과 빈번하게 철학 토론을 벌였다. 사실상 디드로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문화적 제휴와 발전에 많은 역할을 했다. 그는 러시아 예술원의 명예회원으로도 선출되어 러시아의 조형예술을 높이 평가했으나 파리로 다시 돌아와 1784년 71세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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